기사등록 : 2018.01.08 11:34

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 _'된장'녀란 말이 무색한 된장의 능력

In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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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하면서도 저온·건조하여 세균 번식이 덜한 늦가을부터 초겨울에 이르면 바야흐로 메주를 쑨다. 탱탱하게 불린 메주콩을 푹 삶아 절구로 매매 찧고 뭉텅뭉텅 한 덩이씩 뜯어 내어 엎어 치고 메치면서 납작납작하게 큰 목침(木枕) 크기로 모양을 뜬다. 그런 다음에 볏짚을 깔고 훈훈한 온돌방에 쟁여서 며칠을 띄운다. 꺼들꺼들 어지간히 마르면 볏짚대로 면을 따라 사방으로 메줏덩이를 묶어 따뜻한 방 안 천장에 겨우내 줄줄이 매달아 건사한다. 메주 뜨는 냄새는 역하지만 오랫동안 냄새를 맡다 보면 면역이 되면서 되레 구수하기까지 하다.

 

이듬해 이른 봄 메주의 짚을 풀고 꺼내서 땡볕에서 말려 잡균을 죽인다.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볏짚이나 공기로부터 여러 미생물이 저절로 묻어 들어가 콩을 발효시키게 된다. 술은 '빚기', 장은 '담그기'인데 메주는 '띄우기'라 부른다. 여기서 띄우기는 곧 '발효'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바닥에 볏짚을 깔아 주고 그것으로 칭칭 묶어 매달까? 지푸라기에 '고초균(Bacillus subtilis, 마른풀세균)'이라는 세균이 덕지덕지 묻어 있기 때문이다. 풀에도 많지만 주로 흙에 사는 고초균은 막대 모양인 간균(桿菌)이고 편모를 가지고 움직이며 척박한 환경에도 아주 잘 견딜뿐만 아니라 '서브틸리신(subtilisin)'이란 단백질 분해 효소를 분비하여 콩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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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풀세균 말고도 사방에 온통 널려 있는 털곰팡이 같은 여러 곰팡이도 메주 띄우기에 관여한다. 이렇게 해서 까들까들 마르고, 속속들이 고르게 뜨고, 노르스름한 색 바램에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이 잘 뜬 메주다.

 

고초균은 자연계에 널리 분포한 호기성 세균으로 짧은 막대기 모양이다. 특히 효소를 생산해 우유를 응고시키고, 전분을 유지로 분해하기도 한다.

 

"메주의 역사는 곧 장(醬)의 역사다"라는 말이 있듯이 일단 메주가 잘 떠야 맛깔난 간장이 나오고 맛난 된장을 얻을 수 있다. 장맛은 며느리 손맛에 달렸다는 말이 있는데, 어쨌든 새해 2~4월경 장 담그는 날이 오면 말끔히 독을 씻은 다음 짚불로 눅눅한 안을 살짝 그을려 살균한다. 그런 다음 아가리를 한 자락 바른 빛살이 독 안에 들게 놔둔다. 일종의 자외선 소독인 셈이다.

 

넘보라살(자외선)이 뭔지는 몰라도 균들을 죽인다는 것을 우리 훌륭한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알맞은 크기로 쪼갠 메주를 장독에 반쯤 채우고 여태 받아둔 맑은 소금물을 가득 채우고 뚜껑을 덮는다. 독 안 맨 위에는 빨갛게 달군 참숯 몇 덩이와 마른 고추 몇 개를 띄워 불순물과 냄새를 없앤다. 마지막으로 부정을 막자고 장독 언저리에 금줄을 매고 종이 조각을 끼우면 장 담그기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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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은 햇빛이 잘 드는 장독대에 놓고 맑은 날엔 뚜껑을 열어 햇빛을 쐬어 곰팡이가 피는 것을 막는다. 한두 달을 이렇게 메주에 든 아미노산을 우려내며, 간을 맞추는데 간장이 갈색을 띠는 것은 아미노산의 분해 산물인 멜라닌(melanin)과 멜라노이딘(melanoidin) 때문이다.

 

간장은 숙성되는 동안 콩 단백질, 전분질, 지방 등이 분해하여 생기는 아미노산, 유기산 등이 혼합되면서 독특한 향과 맛을 내게 된다.

 

예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학교에서 돌아올라치면 어머니가 부리나케, 샘에서 갓 길어 온 찬물에 정성스럽게 간장을 타서 주셨다. 그러면 영락없는 콜라 빛에 짭짤한 소금기와 달착지근한 감칠맛이 나는 아미노산이 듬뿍 든, 천연 건강 음료가 따로 없었다!

 

간장을 담은 지 40여 일이 지나 장이 익었다 싶으면 독에 떠 있는 메주를 큰 그릇에 건져 내 질척하게 고루 치댄다. 된장을 담을 항아리는 으레 미리 씻어서 햇볕에 바싹 말린 다음 밑바닥에 소금을 좀 뿌리고 녹진녹진한 된장을 담아 꾹꾹 누른 뒤에 웃소금을 덧뿌려 망사를 둘러 항아리 뚜껑을 조심스레 지그시 덮어 둔다.

 

이렇게 한 달쯤 두면 푹 삭으면서 이내 맛이 든다. 간장, 된장, 술, 초, 김치 따위의 물기 많은 음식물 겉면에 생기는 곰팡이 같은 물질들은 골마지 혹은 꼬가지(꼬까지) 따위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된장과 간장이 한데 섞인 걸쭉한 것을 담가 먹다가 이후에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는 기술이 발달된 것으로 보인다.

 

입맛을 돋우는 된장 요리들은 어찌 여기에 일일이 다 쓸 수 있을까.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 된장찌개······. 입맛을 돋우게 할뿐더러 누린내와 비린내를 없애기에 삼겹살이나 생선회에도 찍어 먹는다. 요새 와선 재래 된장이 노화 방지,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허영심이 가득한 여자들을 일컬어 '된장녀'라 부르면 비하의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는 된장이지만, 된장을 얕보지 말라!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436684&cid=58467&categoryId=58467&expCategoryId=58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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