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 2016.08.02 10:56

6·25 참전영웅 김병도(83) 씨 “통일을 못 볼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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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 포성이 멈춘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평화가 아닌 전운이 감돌 정도로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간에도 북녘땅의 핵무기는 65년 전 그때를 잊은 듯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남쪽은 남쪽대로 사드 문제로 국론이 양분되어 어수선하다. 이런 상황을 없애고 남북이 하나 되고자 청춘을 바치고 목숨을 걸면서 노력한 영웅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최근 6·25 참전 용사에게 국가보훈처가 ‘전쟁영웅기장’을 수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재향군인회(회장 한용웅)의 협조를 얻어 그 영웅을 찾아 취재하기로 했다.
 
“6·25는 전쟁이 아닌 부모님의 피와 땀이다.”


슬하의 3남 2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노부부만 따로 살고 있다는 전쟁영웅 김병도(83세)옹의 자택을 방문했다. 안내를 받고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벽에 걸려있는 달력이 먼저 눈에 띄었다. 국가보훈처에서 제작된 것으로 실제 6·25 전쟁영웅의 사진과 철모를 쓰고 전투하는 군인의 그림이 담겨 있는 여느 집에서 볼 수 없는 달력이었다. 그림 속의 철모 쓴 군인과 오늘의 주인공 김 옹의 얼굴이 잠시 오버랩 되기도 했다.
 
재향군인회로부터 간접 소개만 받고 처음 대면한 김 옹을 만나는 순간 취재진의 생각을 잠시 멈추게 했다. 여든을 넘긴 전쟁영웅의 모습은 너무나 정정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잔해야 한다’며 와인을 직접 사오면서 먼저 건강 관련 이야기를 했다. 건강을 위한 침대와 헬스기구 그리고 각종 지압을 위한 기구들을 설명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일 안 하면 죽는다”는 김 옹의 몸과 마음은 아직 청춘이었다. 노부부가 대로변 큰 의류 소매상을 젊은이 못지않게 운영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김 옹은 1933년 2월생이다.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84세다. ‘참전영웅’을 만났기에 먼저 6·25전쟁과 함께했던 군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가 중학교 재학시절 6·25가 발발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어린 나이(18세)에 각 군 하사관 생도모집 공고를 보았고, 공군 제3기 기술하사관학교에 입대한 것이 첫 군인의 길을 걷게 된 시점이라고 했다. 기술하사관학교 졸업 후 공군사관학교 사범중대에 배속되었고, 그 후 제주도 육군하사관학교 내무반장 교관을 지냈다고 한다. 그리던 중 전쟁은 끝이 나고 입대 후 4년 만에 제대했다. 그는 군 생활에서도 모범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항공병학교 내무반장 시절에 이승만 대통령 종군기장을 받을 정도로 완벽한 군인이었다. 1951년 4월 1일 입대하여 1955년 4월 3일 제대했다. 18세에 입대하여 22세에 제대한 셈이다.
 
참전 기간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전쟁 기간이었지만 실전 전투경력은 없다”고 했다. 그는 기술하사관으로 입대했고 공군사관학교 시범중대 의장대, 육군사관학교 훈련소, 공군 항공병대 내무반장 등을 역임했다고 한다. 주로 공군 후방 교육대 등에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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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도중 서랍에서 고인 간직한 사진첩을 꺼내왔다. 거기에는 여러 부대를 옮겨 가면서 촬영한 기념사진들이 수북했다. 60년이 넘은 사진이라 얼굴 식별도 쉽지 않았지만, 그때를 상기하면서 전우들을 가리킨다. 특히 대부분 사진에는 촬영 일자와 부대 이름이 명기되어 있었으며 연도는 서기(西紀)가 아닌 단기(檀紀)로 표시되어 있었다. 사진을 보며 당시를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살아있는 노병(老兵)의 모습 그대로였다. “정전 후 바로 통일이 되는 줄 알았다”는 노병의 기다림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제대 후 대구 청구대학교(현 영남대학교)에서 법문학부를 수료하고 제일모직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 후 대구에서 제법 큰 포목상, 주차장, 과수원 등을 경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9년 4월 1일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온 것이다. 당시로써는 첫 비행기를 타고 온 이민 1세대라고 한다. 
 
한국에서 제법 규모가 큰 사업을 하다가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오게 된 것이 궁금했다. 그는 “넓고 기름진 평화로운 땅에서 씨를 뿌리고 거름도 주며 평화롭게 살고 싶어서”라고 했다. 이민 초기에는 잘 알려진 레띠로(Retiro) 판자촌에서 생활했었다. 처음에는 잡화상을 하면서 터전을 잡았고 거기서 자금을 마련하여 1973년에 지방 리오네그로에 가서 이민 초기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수원을 사들여 경영하다가 분에 차지 않아서 현지인에 넘기고 황무지를 120헥타르를 사들였다. 원시림을 모두 개간하고 정부의 융자도 받아 갖가지 과일을 재배하고 과수원으로 적합하지 않은 황무지에는 소와 말 그리고 양들을 방목했다. 그때를 상기하면서 “석양이지는 저녁 말을 타고 가축을 몰아갈 때가 몸은 고단해도 광야의 주인공이 된듯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그 시절이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꿈꾸던 초원의 생활이었다. 그 후 아르헨티나 군사정부가 들어오면서 농업이 힘들어서 농장을 처분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서 소매상을 시작했다. 현재의 가게 딸린 자택이 그 당시에 구매한 것이라고 한다. 
 
김 옹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6·25 참전유공자회(회장 김영식)’는 재향군인회 아르헨티나지회 소속으로 2003년 ‘6·25 참전용사회’로 출범하였고, 2013년 본국 정부에서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면서 그 명칭도 ‘6·25 참전유공자회’로 바뀐 것이다. 재향군인회 아르헨티나지회에 따르면 현재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참전유공자는 80여 명이 된다고 한다.  
 
한편 재향군인회 아르헨티나지회는 1990년 5월 예비역 육군 중령 고 김인준 씨를 초대회장으로 창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산하단체로 각 군 동지회 및 참전유공자회가 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유공자로 전후 세대에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 같았다. “이제 살아있는 6·25 참전유공자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 마당에 통일을 보지 못하고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며 통일에 대한 열망은 아직도 가슴에 묻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 “우리 후세들이 6·25 전쟁을 그냥 전쟁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 부모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었다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며,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평화통일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에 대한 의견도 물어봤다. 그는 “지구 반 바퀴 거리의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후손임을 잊지 않는 한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취재를 다 마치고 부인이 직접 마련해준 음식은 어느 요리사의 그것에 못지않은 진수성찬으로 손맛까지 더해서 최고의 저녁을 함께 나누었다. 동행한 향군회장은 “노인들이 적적하지 않도록 자주 방문해 드리는 것도 좋은 일이다”며 일찍 일어나게 됨을 죄송스럽다는 말을 남겼다. 노익장을 과시하듯 호탕하게 웃으며 “저녁에 자기 전에 와인을 한 잔씩 하고 잔다”는 말에 그가 이민의 목표로 삼았던 ‘광야의 평화로움’이 보였다. 천성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주거지가 한인밀집지역과 약간은 떨어진 곳이라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읽을 수가 있었다. 노래방 기계까지 틀어가면서 ‘좀 더 있어라’는 말을 뒤로 한 채 일어나기가 정말 송구스러웠다. ‘더 건강하고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남미한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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