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3 09:03

" 아버지 " 박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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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

                                                           박  연주

 

 25년 전, 이민 와서 1년도 체 되지 않았던 어느 여름 날!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뜻 밖에도 아버지 부고 소식이였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방팔방 뛰어 다녔지만 휴가철이라 비행기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이제 막 이민간 딸 걱정에 돌아 가신지 이틀 후에야 연락을 하였다.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 못한 나는 이곳에 살면서 두고 두고 후회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살아생전에 효녀도 아니였고 그렇다고 곰 살 맞은 딸도 아니였다.

그런데 나라를 떠나봐야 애국자가 되고 집을 나서봐야 부모마음 안다고 하듯이 이국 땅에서 살아보니 부모를 그리워하게 되고 또 자식을 키우다보니 부모마음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인자하고 정이 많은 아버지가 아닌 무서운 아버지였다.

이렇다 할 꾸중이나 간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어려웠다.

가부장적인 집안에 남아선호사상이 강해서일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였으니까.

오죽하면 아버지가 외출에서 돌아오시면 우리는 큰 방에서 직은 방으로 도망가곤 했을까!

왜 그렇게 어려워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며 아버지와 특별한 추억은 없었지만 항상 하시던 말씀은 아직도 기억난다.  10년을 넘게 일본에서 사셨던 아버지는

살아생전 일본인들의 생활을 본받아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근면하고 성실한데다 정직하기까지 한 그들의 생활상은 우리 한국인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며

시간 나실 때마다 일본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주시곤 했는데  어린 마음에 그 소리가 진짜 듣기 싫었다.

“왜! 하필 일본이냐며” 불평 아닌 불평을 많이 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결혼을 하고 일본을 방문하고 난 후에야 그렇게 말씀하신 깊은 뜻을

조금은 이해 할 수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일본의 발전을 몸소 체험하신 아버지는 일찍이 자식들은 공부시켜야 한다며

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서울로, 대구로 유학을 보내신 것 같다.

면 소재지 통틀어 유일하게 큰오빠가 서울로 작은오빠가 대구로 대학을 갔으니까. 

동네에서는 경사 났다고 잔치를 하고 난리도 아니였다.

그러나 한편에선 울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큰 언니다.

딸 자식은 아무리 공부를 잘 하고 또 하고 싶어도 농사일 거들라고 학교를 보내 주지 않았다.

울며 불며 매달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 많은 농사일과 동생들 뒷바라지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언니는

두고 두고 아버지를 원망하였다.

그런 언니에게 미안 하셨던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어디 있느냐”고 하시며

“너도 자식 낳아 키워보면 내 마음 알 것이라고” 그 당시를 변명 하셨다.

그렇게 집안에서 동네에서 어른 대접을 받았던 아버지는 우리 집의 법 이였고 절대군주였다

그런 거대한 아버지와 나 또한 부딪히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결혼 문제였다.

홀 어머니에 외동아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니

누구보다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부모로서 또 인생선배로서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주셨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듯이 병원에 실려가는 소동 끝에 승낙 아닌 승낙을 하셨고

결혼 후 몇 년까지 곁을 주지 않으셨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문득 문득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왜냐하면 근 30년을 다른 환경에서 자라 함께 살자니 그에서 오는 갈등이 너무나 많았다.

그럴 때 마다 아버지 말씀과 엄마, 형제가 눈에 밟혔고 열심히 사는 것 만이 반대하던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였다.

그렇게 15년이 흘러 나름 인정을 받고 생활에 안정이 됐을 무렵,

이민바람이 든 남편이 argentina로 간다고 했을 때 난감해 하시던 표정과

"내 죽거던 그 먼데서 올 생각 말고 니 치마 폭에 그 곳 흙이나 한 줌 갖다 뿌리거라"하시던

걱정과 안타까움의 말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잔 정이 없고 무뚝뚝하다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표현을 못 하셨던 아버지!

그래서 자식들로부터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큰 일이 있을 시엔

그 마음을 나타내셨던 속 깊은 아버지였음을 살아가면서 알 수 있었다..

멀리 바라보시기에 내일을 예견하고, 말이 없기에 생각이 더 많고,

사랑의 표현이 약하기에 마음의 고통이 더 많았을 아버지의 마음.

이제는 내가 60이 넘은 아버지 나이가 되어 그간의 세월을 살아 오면서

삶의 무게와 세월의 질곡등 수 많은 역경을 만날 때 마다 옛날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신뢰가

일생을 통하여, 나를 지탱시키며 역경을 극복한 힘의 큰 줄기가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현재의 나를 가능케 한 어제의 아버지를 편편이 떠올리며

나에게는 디딤돌이요, 버팀목이요, 큰 산 이였던 추억 속의 아버지를 그리워해 본다.

벌써 유명을 달리하신 지 20년도 넘었건만, 늘 어렵고 무섭던 아버지가

요즈음은 왜 이리 그립고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특히, 이번 아버지 날을 보내면서 한번 더 깊이 깨닫는다.

아버지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은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서야 알아가는 것 이라고 ….

당신의 방법으로  일곱자식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지금

당신의 깊은 사랑에 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깨달음으로 다시 한번 그리움이 짙어진다.

아버지! 정말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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