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 2017.06.06 18:06

바구니 아니야, 라탄백이야!

In 기타

'명품의 허상' 허물어뜨린 실용 패션, "가볍고 질기고 편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올여름, 바구니 든 사람을 거리에서 마주쳐도 놀라지 말자. 바구니가 아니라 ‘라탄백’일 테니까.

 

라탄(Rattan)은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줄기로 바구니를 짜거나 가구를 만든다. 커다란 라탄백은 휴양지의 상징이다. 리조트 객실과 해변, 수영장을 오갈 때 잡동사니를 담아 다니는 바로 그 가방, 라탄백이 도시로 나왔다.

 

왜 하필 바구니 같은 가방이냐고? 싸고, 질기고, 가볍고, 물에 잘 젖지 않으니까. 무겁고 비싼 가죽 가방도, 너도나도 들고 다니는 에코백도 지겨우니까. 패션의 완성은 자신감이다. 시골 장터를 다니는 할아버지가 닭을 넣으면 바구니가 되고, 내가 멋지게 들면 패션이 된다.

 

라탄백이 원피스나 수영복에만 어울린다는 건 편견. 미니멀한 비즈니스 캐주얼과도 궁합이 꽤 좋다. 라탄백의 미덕은 자연스러움이다. 선글라스, 샌달, 린넨 같은 여름 아이템을 빛나게 해준다. 사진=인터넷 여성 의류 쇼핑몰 ‘인더모먼트’ (왼쪽 두개), 여성복 브랜드 ‘아티젠’ 제공.

 

도시로 나온 ‘라탄백’

 

라탄백이 패션계에 처음 등장한 건 1950년대다. 세계 경제가 초토화했으니 실용성을 따진 게 당연했다. 영국 가수이자 배우인 제인 버킨은 라탄백 마니아였다. 히피인 그의 1960년대 사진엔 라탄백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드레스를 입고도 라탄백을 들었다. 라탄백을 든 버킨의 모습은 2017년의 패션 잡지에서 튀어나왔다 해도 믿을 정도로 무심한 듯 시크하다. 버킨에게 라탄백은 그저 멋이 아니었다. 빨래 바구니를 닮은 원통형 라탄백에 아이들 물건을 잔뜩 넣고 다녔다. 그런 버킨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게 그 유명한 에르메스의 버킨백이다. 과시적 소비의 상징인 버킨백이 기저귀 가방에서 나왔다니. 정작 버킨은 터무니없이 비싼 버킨백을 혐오해 라탄백만 들고 다녔다고 한다.

 

요즘도 라탄백은 알렉사 청, 잔느 다마스, 린드라 메딘 등 패션 철학이 확고한 패셔니스타의 아이템이다. “나는 바구니처럼 보이는 가방을 들어도 멋있다”는 빛나는 자신감. 올해 봄ㆍ여름 시즌에는 발렌시아가, 로에베, 사카이 등 고가 패션 하우스와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라탄백을 예년보다 풍성하게 내놓았다. ‘자연의, 자연을 위한, 자연에 의한’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각 잡힌 모양에 가죽이나 천을 덧붙인 디자인으로 리조트 아이템이라는 편견을 덜어 낸 게 올여름 라탄백의 특징이다. 라탄보다 부드러운 왕골로 만든 백, 대나무로 만든 뱀부백도 나왔다. 서울 명동 자라 매장에서 라탄백을 고르는 30대 여성들을 만났다. “가볍고 독특하다. 생각보다 촉감이 좋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손에 부드럽게 감긴다. 엄마가 ‘이제 바구니까지 사들이니?’ 하지 않을지 걱정되긴 한다.”

 

'히피' 제인 버킨의 오리지널 라탄백.사진 'Bonjour Coco' 제공. (인스타그램 계정 @janebirkinbasket)

 

천연 소재인 라탄백은 자연스러운 미니멀리즘 코디에 어울린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는 “라탄백은 선글라스, 플랫 슈즈, 샌들 같은 소품, 청, 린넨 같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소재와 잘 맞는다”며 “오래도록 아끼며 들기보다는 ‘지금 이 계절, 이 장소’를 만끽하려 택하는 시즌 아이템”이라고 했다. “한껏 차려 입은 정장에 라탄백을 드는 건 너무 나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라탄백 손잡이에 스카프를 감아 보자. 조금 더 점잖아진다. 라탄백이 하늘하늘한 원피스에만 어울리는 청순 패션 아이템이라는 고정 관념도 버리자. 재킷과도 궁합이 꽤 괜찮다.

제인 버킨의 원조 라탄백은 빨래 바구니 모양이었다. 요즘 라탄백엔 가죽, 인조 퍼, 패브릭 같은 장식을 더해 귀엽거나 시크한 멋을 살린다. 자라(왼쪽 세 개)와 비이커 '파티마 모로코' 제품.

 

‘과시적 소비 패션’의 퇴조

 

“패션을 죽이는 건 망할 X의 브랜드 로고다. 그건 패션이 아니라 상표다”(알렉산더 맥퀸), “고급 제품일수록 편해야 한다. 편하지 않으면 고급이 아니다”(코코 샤넬), “여성은 편안한 옷을 입었을 때 가장 섹시하다”(베라 왕), “당신을 스스로 정의하라. 옷 입는 방식으로 표현하려 하는 게 무엇인지 결정하라”(지아니 베르사체)

 

거장들의 패션 철학이다. 이름도 괴상한 ‘명품’이라는 딱지를 붙여 우리의 통장을 털어간 그들이 실은 ‘실용’을 신봉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천박한 ‘명품 신화’는 역시나 날조된 것이었다. 그 비밀을 알아챈 사람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명품백’을 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편하면, 내 눈에 예뻐 보이면 그만이므로. 손에 넣는 순간 허무감이 밀려드는 허상 같은 가방에 수백만원을 지불하는 건 너무나 허무하므로. 가방 가격이 품질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으므로. 비행기 표, 소파, 냄비, 에스프레소 머신, 책, 오디오… 보다 오래가는 행복에 쓸 돈도 모자라므로.

 

게티이미지뱅크

 

가방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속옷 브랜드 ‘비비안’이 최근 실시한 구매 행태 조사에서 여성들은 ‘브래지어를 살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착용감과 활동성(35%)’을 제일 많이 꼽았다. ‘볼륨과 보디 라인(28%)’ ‘가격(13%)’은 뒤로 밀렸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있어 보이는 기능’을 강조하는 브래지어를 입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뜻이다.

 

패션 디자이너 지춘희 미스지컬렉션 대표는 “사람들이 이제서야 뭘 좀 알고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비싼 아이템은 돈이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지만, 나만의 것, 나의 패션 정체성은 결국 내가 배우고 찾아 나서야 한다”고 했다.

 

라탄백과 에코백의 등장은 명품백이 자리를 비워 줬기에 가능했다. 라탄백은 비싸지 않다. 브랜드 값을 치를 생각이 없다면, 몇만원이면 구할 수 있다. 가방을 모시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때도 잘 타지 않는다. 바닥에 툭 내려 놓아도 마음이 편하다. 물을 흘려도 슥 닦으면 그만이다. 고통받았을 가여운 동물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가볍다.

“아무리 그래도 바구니인데… 돗자리랑도 비슷하고…” 망설여진다면 굳이 도전하지 않아도 된다. 유행은 유행일 뿐이니까.

 

'인더모먼트' 제품.

 

<출처> http://www.hankookilbo.com/v/b6849f05467e45ae9b9ce0c3d2770545


Extra Form

  1. 2018 봄/여름 4대 패션위크 대표 트렌드 키워드 12 (1-6)

    지난 9월 7일 뉴욕부터시작된 인터내셔널 패션위크가 런던, 밀라노를 거쳐 10월 3일 파리 루이비통 컬렉션을 끝으로 한달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됐다. 이번 패션위크를 통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제시한 내년에 주목할 만한 2018 봄/여름 대표 트렌드 키워드 1...
    Category패션/경제
    Read More
  2. [건강리포트] 일상생활 속 팔꿈치 통증, 테니스엘보 의심

    팔꿈치 바깥쪽이 아픈 질환인 외측 상과염, 일명 테니스엘보는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을 주는 질환이다. 머리를 빗는 일,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일 및 글씨를 쓰는 일, 물건을 들거나 집는 일 등 여러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 팔꿈치 통증을 일으...
    Category기타
    Read More
  3. 환절기에 먹으면 좋은 면역력 높이는 보양죽 3가지

    따뜻한 음식이 생각나는 계절이 돌아왔다. 한여름에는 시원하게 들이킬 수 있는 콩국수나 얼음 동동 띄운 냉면이 생각나고, 추운 겨울에는 언 몸을 녹여 줄 뜨끈한 국물 음식이 생각나는 것은 계절의 변화에 맞춰 일어나는 우리 입맛의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
    Category요리
    Read More
  4. 권오길의 괴짜 생물이야기_단풍을 만드는 식물의 노폐물 주머니

    이원중 시인은 "손을 움켜쥐면 주먹이요, 펴면 단풍잎입니다"라고 말했다. 여태 내 손이 단풍잎인 것도 모르고 살았다니. 어쨌거나 가을이 되면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뭇 산이 울긋불긋 가을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하지만 저 현란한 단풍 숲 속에 황혼...
    Category건강
    Read More
  5. 코골이 치료, 무리한 수술만이 답은 아냐…

    예로부터 심각한 질환으로 인식되지 않던 코골이는 그저 온전한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만이 아니다. 코골이를 하는 사람과 함께 공동 생활하는 사람도 밤새 시끄러운 코골이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코를 고는 본인은 수면무호흡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건...
    Category기타
    Read More
  6. 노인성 난청, 환청이 개선되는 청력 회복의 묘약 ‘검은콩 끓인 물’

    편집실로 걸려온 전화 한 통! 70대 노인이라고 밝힌 독자는 요즘 들어 귀가 잘 안 들리고 이명도 심하고, 환청도 들린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간절히 물었다. 사실 나이가 들면 청력에 변화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는 백발 지팡이로 막을 ...
    Category요리
    Read More
  7. 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_양념은 식물의 노폐물이다

    "사람은 밥만 먹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삶이 너무 팍팍해서는 안 되고 뭔가 좀 넉넉함과 남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의미로 음식에도 맛을 돋우는 양념이 흠뻑 들어가야 맛깔난다. 양념거리는 고추, 마늘, 생강, 파, 양파, 부추, 후추,...
    Category건강
    Read More
  8. 2018 봄/여름 밀라노패션위크 트렌드 키워드 8

    2018 봄/여름 밀라노패션위크는 파워풀 우먼과 호화로운 스팽글 장식, 그리고 과거에 대한 찬사가 이어진 6일간의 대장정이었다. 이번 시즌 밀라노 패션위크 디자이너들이 제시한 트렌드 키워드 8가지를 소개한다 지난 9월 7일 뉴욕을 시작으로 대서양을 건너 ...
    Category패션/경제
    Read More
  9. 팔방약효 마늘 살 빼는 효과도 '짱' 초마늘 다이어트

    몸에 좋은 마늘은 예로부터 건강식으로 많이 이용되어 왔다. 그런 영양만점인 마늘을 식초에 절여 초마늘을 이용한 다이어트를 하면 몸의 신진대사도 돕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여름철 피로회복에도 좋은 초마늘을 이용한 다이어트법을 알아본...
    Category요리
    Read More
  10. "유목민처럼 사업하라"…하경서 엘살바도로 한인회장

    연매출 3천500억 카이사그룹 총수…"쿠바·북한 진출이 목표" 하경서 엘살바도르 한인회장.27일 개막한 '2017 세계한인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그는 연매출 3천500억원을 올리는 카이서그룹을 이끌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
    Category기타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8 Next
/ 3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