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 2017.12.19 12:36

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 _김장을 담글 땐 풀을 넣어야 한다

In 건강

남도는 좀 늦지만, 내가 살고 있는 춘천에서는 봄 고추 모종은 5월 5일에, 가을배추 모종은 8월 15일에 종묘장에서 사다 심는다. 무는 이보다 좀 더 일찌감치 씨를 뿌린다. 옛날부터 씻나락(볍씨) 파종 전날엔 야사(夜事)도 삼갔다고 한다. 농사에 모든 정성을 다 쏟던 옛 어른들의 심성이 가득 묻어 있는 말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지 않던가.

 

이렇게 심은 무와 배추는 석 달이 다 될 즈음에 클 대로 다 커서 엉덩이만 한 통배추엔 샛노란 고갱이가 꽉 차오르고 미인 '꿀 장딴지'만 한 통무는 밭둑에 다리를 반만 내놓고 멋을 부린다. '추상같은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배추는 겉잎을 모아 짚대로 싸 주고 무는 서둘러 뽑아서 머리 무청은 싹둑 잘라 내어 짚으로 머리채 갈라 땋듯이 총총 엮어 응달에 달아 맨다.

 

이런 말이 있다. "풋내 나는 겉절이 인생이 아닌 농익은 김치 인생을 살아라. 그런데 김치가 제 맛을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 배추가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또 한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다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돼서 또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다시 한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낸다. 그 깊은 맛을 전하는 푹 익은 인생을 살아라. 그러기 위해 오늘도 성질, 고집, 편견을 죽이면서 살아야 한다." 황소고집을 지닌 우리네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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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은 참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김칫거리는 배추나 무가 주지만 열무, 갓, 파, 고들빼기, 씀바귀 등 지방에 따라 모두 합쳐 보면 일흔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무를 숭덩숭덩 잘라 채를 치고 거기에 고춧가루를 듬뿍 흩뿌리고, 찹쌀 풀, 다진 마늘, 으깬 생강, 천일염, 집 간장, 설탕, 조미료 등 갖은 양념은 기본이고 아미노산 덩어리인 멸치젓, 어리굴젓, 새우젓을 두루 부어 주물럭주물럭, 뒤적뒤적 버무린다. 나중에 배춧잎 사이에 집어넣을 생새우나 생 갈치, 생태들도 집안마다 다르게 쓴다.

 

우리나라에서 김장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이규보가 편찬한 『동국이상국집』을 보면 김장과 유사한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김장을 할 때 보면 비닐이나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마구 섞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바로 '엄마 손맛'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맨손에는 여러 가지 세균들이 묻어 있지만 그것이 발효를 하니, 무조건 더럽다 여기진 말아야 한다. 보통은 여러 양념 준비에 손이 깨끗할 대로 깨끗하지만 그래도 세균이 꽤나 묻어 있다.

 

고추장이나 깍두기, 동치미, 김장 등을 할 때 왜 찹쌀이나 멥쌀, 밀가루로 풀을 쑤어 넣는 것일까? 이것들은 바로 세균들이 먹고 번식(발효)할 먹잇감(배지)인 것이다. 푸성귀나 다른 양념에 든 양분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니 먹을거리를 이런 식으로 보충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보통 미생물들은 짠 소금에 죽어 버리지만 염분에 끄떡 않는 내염성 세균인 유산균은 남아서 김치를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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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장을 담그던 집사람이 김치를 통에 넣고 힘들여 꼭꼭 눌러 댄다(김칫독은 큰 돌로 누른다). 왜 그러느냐고 집사람에게 물었더니만, 김장하는데 풀을 왜 넣느냐고 물었을 때처럼, "그냥 그렇게 하는 것" 이라고 힘주어 퉁명스럽게 답한다. 김치에 과학적 원리가 담긴 것을 알고 김장을 하면 더 좋았을 텐데. 김치를 힘들게 눌러 담는 이유는 김치에 사는 유산균들이 산소가 있으면 되레 죽어 버리는 혐기성 세균이기 때문이다.

 

김장을 할 때 밀가루로 풀을 쑤어 넣는 것은 유익한 세균들의 번식을 위해서다. 그리고 김장을 한 배추를 눌러 담는 것은 김치에 필요한 유산균이 산소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기(산소)를 다 빼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소금에 죽지 않으며 산소를 싫어하고, 낮은 온도를 좋아하는 이 유산균들이 김치의 맛을 낸다. 김칫독을 응달에 묻어 두면 겨우내 그 속의 온도가 변함없이 영하 1도 근방을 유지하는데, 이를 본떠 흉내를 낸 것이 바로 김치냉장고이다.

 

이런 여러 세균이 수를 늘리면서 유기산을 많이 내놓으니 이것이 김치의 특유의 맛과 향을 낸다. 아주 잘 익은 김치에는 유익한 유산균이 99퍼센트이고, 다른 세균이나 곰팡이가 1퍼센트 정도 들었다고 한다. 유산균 세상이 얼마 이어지다가 산도가 떨어지면서(시어지면서) 어느 순간 유산균들이 맥을 못 추고 시들시들 죽어 가는 때가 온다.

 

영원한 것은 없다더니만······. 이때다 하고 여태 숨죽이고 있던 곰팡이 무리(효모)들이 득세하면 김치에서 군내가 나고 국물이 초가 되니 일종의 부패다. 그러므로 아주 산패한(시어진) 묵은 김치에는 유산균이 거의 없다.

 

김치는 식이섬유와 비타민, 무기질 등이 풍부한 건강식품이다. 이들 다양한 영양소는 항암, 면역력 증강, 소화 촉진 등 다방면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새야 한겨울에도 신선한 채소를 먹지만 그 옛날엔 김치 말고 대신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누가 뭐래도 김치는 조상의 넋이 담긴 예사롭지 않은 종합 영양 식품이다.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436683&cid=58467&categoryId=58467&expCategoryId=58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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